뉴욕 시간으로 이른 아침, 암호화폐 시장의 전광판은 온통 급락을 알리는 파란불로 도배되었다. 굳건해 보이던 비트코인이 지난 몇 주간 지켜오던 7만 3천 달러 선을 결국 내어주며 6주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장중 한때 3.3%가량 밀리며 4월 13일 이후 가장 낮은 72,643달러를 터치한 비트코인은 현재 73,445달러 부근에서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대장주가 흔들리자 알트코인들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2천 달러를 허무하게 내주며 4.6% 넘게 빠진 1,965달러를 기록해 거의 두 달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리플(XRP) 역시 1.30달러 밑으로 미끄러지며 약세를 면치 못했다. 그 결과 전체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단 하루 만에 3.3%가 증발해 2조 5,300억 달러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이번 급락을 촉발한 직접적인 뇌관은 단연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 고조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이란을 겨냥한 미국의 새로운 공습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나마 시장 한켠에 피어오르던 휴전 기대감은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이는 즉각적으로 거시 경제 전반에 걸친 강력한 ‘리스크 오프(위험 자산 회피)’ 현상으로 번졌다. 국제 유가는 뛰고 전통 증시는 주저앉는 흐름 속에서 대표적인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암호화폐 역시 그 파도를 피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정학적 리스크 하나만으로 하루 만에 10억 달러에 가까운 포지션이 증발하는 이 엄청난 시장 충격을 전부 설명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냉정하게 시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악재가 터지기 전부터 코인 시장은 이미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얇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었다.

이번 달에만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2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는 지표가 이를 방증한다. 시장의 펀더멘털과 투자 심리가 이미 극도로 취약해져 있던 찰나에 중동발 악재가 불씨를 당겼고, 시장의 상승을 점치던 롱(매수) 포지션 위주로 24시간 동안 약 10억 달러가 연쇄 청산당하는 ‘롱스퀴즈’가 발생하며 낙폭을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결국 이번 하락은 돌발적인 외부 변수와 내부의 누적된 피로감이 맞물려 터진 필연적인 조정 장세로 읽힌다.